뒷골목 의사 글렌 2권
제 2회 의뢰
[글렌 선생님, 계신가요?]
진료소에 온 간호사가 물었다.
매끄러운 말투에서 야무진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이는 20대 초반쯤일 것이다.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했지만, 꽤 미인이었다.
[아, 나인데?]
글렌은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그녀는 살짝 목인사를 하고는 우산을 접은 뒤
열었던 현관문을 닫았다.
큰비에 우산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젖은 앞머리에서 볼을 타고 빗물이 떨어졌다.
그녀가 입은 하얀 제복 위에도 빗물이 스며들어
제복을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는 듯했다.
글렌은 거금이 들어있는 나무 상자를
거칠게 방구석으로 던졌다.
그리고 선반에서 깨끗한 흰 수건을 꺼내
이쪽으로 걸어오는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예를 표하고 서둘러 젖은 머리를 닦았다.
그 모습에서 어딘가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글렌은 순간,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빼앗겼다.
전에 어디서 만났던가?
......라고 자기도 모르게
뻔한 작업 멘트를 말할 뻔했다.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마음을 바로잡은 후에
그녀를 앞쪽 의자에 앉게 했다.
[그래서 나한테 무슨 용건이지?]
[......제 이름은 셰리. 에메리아 종합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입니다.]
[병원에 난치병에 걸린 소년이 입원 중인데
선생님이 그 아이의 수술을 맡아주세요.]
------진료소 안에 정적이 흘렀다.
답변이 없자 고개를 갸우뚱하는 셰리.
글렌은 크크큭 하고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더욱 커졌다.
에메리아라는 병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작년에 공국을 통치하는 대공가가 출자해서 세운
대형 병원으로, 각지의 우수한 의사를 채용하고
최신 의료 설비도 구비한 곳이었다.
병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감당할 수 없는
환자의 수술은 외주를 주는 것이었다.
의뢰자의 비밀을 지키는 뒷골목 의사 글렌에게는
결코 드문 의뢰는 아니었다.
일종의 돌팔이라 할 수 있는 뒷골목 의사에게
수술을 의뢰하는 병원 의사들의 한심함에
그는 언제나 솟구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크크......그래서?
높으신 분께선 얼마를 내신다고 하셨지?]
겨우 웃음을 멈춘 글렌은 약점을 잡을
요량으로 바로 협상에 들어갔다.
셰리의 얼굴은 진지했다.
그녀는 결의를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착각하고 계신듯합니다만......
......이것은 개인적인 의뢰입니다.]
[......무슨 뜻이지?]
글렌의 얼굴이 순간 의아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셰리는 잠깐 시선을 돌린 후
다시 한번 짜내듯이 말을 했다.
[환자인 아이는......<결정병>이에요.]
병명을 듣자 글렌은 눈을 크게 떳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에게 온 의미를 이해했다.
---<결정병>
글렌에게는 특별한 병명이었다.
뒷골목 의사로서 살아가는 그를 만든
근간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환자에게 안내해 주겠나?
할지 말지는 진찰 후에 결정하지.]
진심이 담긴 그의 목소리에
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